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지정문화유산

sub01_01_11_img01
getImage (1)
getImage (2)
4
5
6
7
8
9
10
11
이상재선생생가지
  • 종별충청남도 기념물
  • 소재지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단길 91-2
  • 지정일1990-12-31
소개
독립운동가, 민족주의자로써 1927년 3월 29일 타계하고 우리나라 최초로 사회장을 치룬 이상재선생의 생가로 1972년과 1980년, 2012년에 서천군에서 복원하여 관리하고 있다. 1850년 충청남도 한산에서 태어난 월남 이상재선생은 조국의 독립과 개혁을 위해 살았던 정치가이자 운동가로 조국 독립의 바탕은 올바른 인재 양성에 있다고 역설하였으며, 조국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고종 18년(1881)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 고종 25년(1888) 전권대신 박정양을 수행하여 주미공사 서기로 부임했다. 미국에 다녀온 뒤, 신문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1896년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민중 계몽에 앞장섰다. 1927년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단일 전선을 결성하여 일본과 투쟁할 것을 목표로 신간회를 조직할 때, 창립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저서로 논문집 『청년이여』, 『청년위국가지기초』 등이 있다. 선생의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초가집으로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대문은 솟을대문을 두었다. 안채는 1800년경에, 사랑채는 1926년경에 지었다고 하나 원래 건물은 1955년에 소실되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72년, 1980, 2012년 세 차례에 걸쳐 복원한 것이다. 특징으로는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 짓는 내외담 없이 생가터에 들어서면 안채가 훤히 개방된 구조이다. 생가 옆에는 월남 이상재 선생의 나라사랑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이상재선생 나라사랑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찾아오시는 길
담당부서 :
경제진흥과
연락처 :
041-950-6884
최종수정일 :
2024-07-11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