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의 다양한 명소를 소개합니다
독립운동가, 민족주의자로써 1927년 3월 29일 타계하고 우리나라 최초로 사회장을 치룬 이상재선생의 생가로 1972년과 1980년, 2012년에 서천군에서 복원하여 관리하고 생전에 남기신 유물들을 전시하기 위하여 이상재 선생 유물 전시관을 개관 운영중 조선 후기 사회 운동가인 이상재(1850∼1927) 선생의 생가가 있던 자리이다. 월남 이상재선생은 독립운동가, 민족주의자로써 1927년 3월 29일 타계하고 우리나라 최초로 사회장을 치루어진 인물이며, 그는 종교가·정치가로 일찍이 기독교에 입교하여 신앙운동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노력했다. 고종 18년(1881)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 고종 25년(1888) 전권대신 박정양을 수행하여 주미공사 서기로 부임했다. 미국에 다녀온 뒤, 신문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1896년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민중 계몽에 앞장섰다. 1927년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단일 전선을 결성하여 일본과 투쟁할 것을 목표로 신간회를 조직할 때, 창립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저서로 논문집 『청년이여』, 『청년위국가지기초』 등이 있다. 선생의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초가집으로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대문은 솟을대문을 두었다. 안채는 1800년경에, 사랑채는 1926년경에 지었다고 하나 원래 건물은 1955년에 없어지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72년, 1980, 2012년 세 차례에 걸쳐 복원한 것이다. 생가 옆에는 유물전시관이 있어 선생이 생전에 남긴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징으로는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 짓는 내외담 없이 생가터에 들어서면 안채가 훤히 개방된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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