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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군답사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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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천군답사
작성자 전인혜 등록일 2018-12-13 조회 481
첨부
서천답사(최미르)

오늘은 서천으로 답사를 갔다.
첫 번째로 간 곳은 문헌서원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가 복원하였지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었다. 이곳에는 목은 이색의 영정과 묘가 있다. 이색은 고려 말기 사람으로 야은 길재,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를 지킨 삼은 중 한 사람이다. 이색은 학식이 매우 뛰어났지만 두 왕을 섬길 수 없다고 조선을 건국하는데 전혀 힘쓰지 않았다. 이색의 후손들 또한 훌륭한 인물들이 많은데 사육신 중 한 명인 이개, 월남 이상재선생 등이 대표적이다.
다음은 신성리 갈대밭에 갔다. 갈대는 엄청 컸고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처음에는 방을 쓰는 빗자루로, 나중에는 마당을 쓰는 빗자루로 마지막에는 불쏘시개로 사용했다고 한다. 갈대는 정화작용을 해서 주변의 물을 매우 맑고 깨끗하게 만드는 유익한 식물인데 이렇게 멋진 가을 풍경까지 만들어주니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너무 멋진 풍경화가 되었다.
다음에는 월남 이상재 생가지에 갔다. 이상재 선생님은 서천에서 태어났고 우리나라 최초로 야구 시구를 했던 사람이다, 또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부회장이 되어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다. 만민공동회에서 당시 신분이 낮은 백정도 발표하게 하였고 그 백정의 아들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의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상재 선생이 죽었을 때 장례는 한국 최초의 사회장이 집행되었다.
바다 위를 걷는 스카이 워크에도 갔다. 고려 시대 때 최무선이 화포를 발명해 왜구와 이곳에서 전투하였다고 한다. 또 삼국시대 때에는 기벌포 전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한산 모시관에 갔다. 모시 잎은 생긴 모양이 깻잎과 매우 비슷했다. 그리고 신성리 갈대처럼 버릴 거 하나 없는 식물이다. 잎으로는 모시 송편을 만들고 줄기로는 순백색 옷을 만들고 어린 새순으로는 나물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또 한번 자라면 끝이 아니라 계속 자라서 1년에 3번 수확한다고 한다. 해설사 선생님께서 만드는 방법도 직접 보여주셨다. 처음에는 무딘 칼로 껍질을 벗기고 속껍질을 찢고 찢어서 실을 만든다. 이 과정을 하다 보면 이를 사용하게 되는데 어머니들의 이가 닳는다고 한다. 여기에서 ‘이골이 난다’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실이 얇아서 세모시라고 불린다.
문화창작공간에 갔다. 이곳은 일본강점기 일본으로 실어갈 쌀을 저장했던 미곡 창고였다. 나는 도자기로 만든 멸치를 금, 은색으로 색칠하여 목걸이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동백나무 숲에 갔다. 이곳에서 노을과 해가 지는 모습을 보았다. 울긋불긋 해가 지는 모습은 가을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오늘 많은 곳을 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한산 모시관이었다. 순백색의 옷을 꼭 입어보고 싶었다. 또 나연옥 해설사 선생님께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셔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다음에는 가족끼리만 또다시 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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