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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유래

우리면소개 우리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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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군의 군청소재지인 서천읍 남서쪽에 위치해서 서쪽으로는 서해와 접하고 장항읍과 접하고 있는 면이다. 원래 서천군 마길면(馬吉面)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마동(馬東)과 서남(西南)의 이름을 따서 마서면(馬西面) 이라 하였다.

마서면내에는 500여년간을 뿌리하고 사는 100여호의 대성(大姓)이 4성이나 있을 정도로 전통성이 강한 지역이다.집성마을의 양상은 다양하나 나주나씨(羅州羅氏)가 300여호, 평해구씨(平海丘氏), 280여호, 금녕김씨(金寧金氏)200여호, 파평윤씨(坡平尹氏)120여호가 집성촌을 이루고 그 외에도 광산김씨(光山金氏)70여호 남포백씨(藍浦白氏)60여호 전주최씨(全州崔氏)50여호 등이 있으며 집성촌은 각양각색이다.

계동리 (桂東里)

서천군 서부면(西部面)의 지역으로서 계동과 동죽의 이름을 따서 계동리라 하였다. 평해구씨(平海丘氏)의 집성촌이 있다.

계룡말

마을 지형이 닭 벼슬과 용꼬리 같다 하여 계룡말이라고 부른다. 계룡리(鷄龍里)계룡당리(鷄龍堂里)라고도 부르며 신당(神堂)이 있었다.

까치다리

작교(鵲橋)라고도 부른다.옛날에는 까치가 많았던 마을이라 까치다리 작교라고 부른다.

동죽(東竹)

큰마을 동쪽에 있으며 대밭이 많으므로 동죽(東竹)이라고 부른다.

비그매

횡산(橫山) 횡산리(橫山里) 산서리(山西里)라고도 부르는 마을이다. 산이 빗겨져 있다 해서 비그매라고 부른다.

새암굴

천곡(泉谷)이라고도 부른다. 큰 샘이 있는 마을이다.

안태

안터 내기(內基)라고도 부른다. 안쪽으로 자리한 마을이다.

옥굴

고려때 서주군(西州郡)의 옥(獄)이 있었던 마을이다. 옥곡(獄谷)이라고도 부른다.

남전리(南田里)

서천군 남부면(南部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개혁때에 남산(南山)과 합전(蛤田)의 이름을 따서 남전리라 하였다. 나주나씨(羅州羅氏)와 파평윤씨(坡平尹氏)가 집성촌을 이루는 지역이다.

말무덤

마을에 큰 무덤이 있으므로 말무덤이라고 부른다.

백사장(白沙場)

쇄팽이 백사리, 백사정리라고도 부른다. 서쪽 바닷가에 모래가 많으며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지은 백사정(白沙亭)이 있었다.

서사리(西沙里)

비야장이라고도 부른다. 백사장 서쪽에 있으며 물새가 많이 나르는 마을이라 비야장 이라고도 부른다.

윷밭골

칠전(漆田), 칠전리(漆田里)라고도 부른다. 옻나무가 많은 마을이다.

조개티

합전(蛤田), 합전리(蛤田里)라고도 부른다. 마을 산의 형국이 조개같다 한다.

당선리(堂仙里)

서천군 마길면 (馬吉面)의 지역으로서 당산이 있으므로 당선이 당산 이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두못치

쌍연(雙淵),쌍연리(雙淵里)라고도 부른다. 옛날에 마을앞에 연못이 두 개가 있었다 하여 쌍연 쌍연리 두못지라고 부르다가 두못치라고도 부르는 마을이다.

재너머

두못치 서쪽으로 산너머에 마을이 있으므로 재너머라고 부른다.

덕암리 (德岩里)

서천군 동부면(東部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홍덕(洪德)과 백암(白岩)의 이름을 따서 덕암리라 하였다.

대추장터

대치장(大雉場) 대치장터라고도 부른다. 마을 지형이 꿩의 지형이라 하여 대치장,대치장터라 부르다가 변하여 대치장터라고 부른다.

동고개

동고리(東古里)라고도 부른다. 동태산(東台山)아래에 있으므로 동고개(東古介) 동고리라고 부른다.

용화실

용과곡(龍谷), 삼연리(三淵里 三里)라고도 부른다. 마을에 못이 세 개가 있는데 그 못에서 용이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한다.

홍덕기

홍덕(洪德), 홍덕리(洪德里)라고도 부른다. 넓은 들을 두고 있는 마을로 여러가지 덕을 넓게 펼치는 뜻에서 홍덕이라고 부르다가 홍덕기라고 부른다.

한림재

옛날부터 선비가 많이 나오는 마을이라 한림재라고 부른다.

도삼리 (道三里)

서천군 동부면(東部面)의 지역으로서 뒷산에 세 봉우리가 솟아 있으므로 도삼이 도사미라 부르던 지역으로 1913년에 도삼리(道三里)가 되었다.

모군리 (毛軍里)

모군리(募軍里)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군사를 모집할 때 이 마을에서 군사를 모집하였다 해서 모군리(募軍里 毛軍里)라고 부른다.

대안지 (大雁地)

대안(大雁) 대한리(大汗里) 본오지라고도 부른다. 마을에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의 명당이 있다는 마을이다. 한 겨울에는 기러기가 많이 날아온 마을이다.

서천망월 (舒川望月)

망월리(望月里)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에 한산군과 서천군의 경계에 있는 마을중에서 서천쪽에 속함으로 서천망월이라고 부른다. 보름달을 보는 낮은 산이 있는 마을이었다.

봉남리 (烽南里)

서천군 서부면(西部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봉하(峰下)와 남산(南山)의 이름을 다서 봉남리라 하였다. 전주최씨(全州崔氏)50여호가 집성촌을 이루었던 마을이다.

성너머

남산에 옛날에 쌓은 성이 있고 그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 성너머라고 부른다.

대황굴

대양골이라고도 부른다.

화동 (禾洞)

수원이 좋아서 농사가 잘 된다 해서 화동이라고 부른다. 숫굴이라고도 부른다.

봉하리 (烽下里)

한적골 한적곡이라고도 부른다. 운은산봉수 아래에 마을이 있으며 서림사(西林寺)라는 큰 절이 있었던 마을이다.

산내리 (山內里)

서천군 동부면(東部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산북(山北)과 원내(院內)의 이름을 따서 산내리라 하였다. 남포백씨(藍浦白氏) 60여호가 집성촌을 이룩했던 지역이다. 남포백씨의 낙향중시조 이후 17대손이 거주한다.

산뒤

산북, 산후, 산북리, 신산(新山)이라고도 부른다. 도고산(道高山)북쪽 뒤가 되므로 산 뒤, 산북이라 부른다.

원안

원내 원내리(院內里)라고도 부른다. 옛날부터 원(院)안쪽에 있었던 마을이라 원안,원내라고 부른다.

종중개

원안 동북쪽에 있는 내 옆에 마을이 있으므로 종중개라고 부른다.

송내리 (松內里)

서천군 마길면(馬吉面)의 지역으로서 송안 송내라 부르던 곳이다.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송내리가 되었다.

관정 (冠亭)

옛날에 비인으로 유배된 한 선비가 유배된 장소에서 머무르기가 적적하여 남쪽으로 걸어와서는 마침 소나무가 우거진 이 곳에서 잠을 자다가 깜짝 놀래며 잠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그때서야 유배지를 떠난 죄책감을 느끼고 유배된 장소로 돌아가려 하는데 자기앞을 한 도승이 가로막고는「남쪽으로 내려 가야 산다」함으로 그길로 남쪽으로 도망쳤다가 그 후에 유배가 풀리고 큰 벼슬에 오르게 되었다. 그후 그 선비는 자기를 구해준 도승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으나 도승은 찾지 못하고 자기가 누워서 낮잠을 자던 곳을 관정(冠亭)이라 불렀다 한다. 그 곳에 마을이 들어서서 관정이라고 부른다.

구절 (九切)

구절리(九切里)라고도 부른다. 마을에 낀 산이 아홉군데나 끊어졌다 해서 구절 구절리라고 부른다. 구즐리(仇里)라고도 부른다.

수역 (水逆)

금강 물이 역수하는 지점에 마을이 있으므로 수역이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효실(孝實)

효실리(孝實里)라고도 부른다. 효자 박수충(朴守忠)이 살았던 마을이라 그리 부른다.

송석리(松石里)

서천군 서부면(西部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송내(松內)와 와석(臥石)의 이름을 따서 송석리라 하였다.

갈목

노항(盧項) 노항리(盧項里)라고도 부른다. 갈대가 많은 목에 마을이 있으므로 그리 부른다.

눈들

마을이 솔밭에 둘러 쌓여 있으므로 송내(松內)라고 부른다.

송내 (松內)

용수두(龍水頭),용수리(龍洙里)라고도 부른다.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해서 그리 부른다.

슴갈목

마을 지형이 갈매기의 목같이 생겼으며 갈대가 많으므로 슴갈목이라고 부른다.

신포리 (新浦里)

서천군 동부면(東部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신리(新里)와 은포(銀浦)의 이름을 따서 신포리(新浦里)라 하였다. 나주나씨(羅州羅氏)의 집성마을이 있는 구역이다.

공덕 (公德)

공덕산(公德山)아래에 마을이 있으므로 공덕이라고 부른다.

대숲말

대섭말이라고도 부른다. 마을에 대나무숲이 있으므로 그리 부른다.

은포 (銀浦)

은개 아포(牙浦)라고도 부른다. 은빛 찬란한 들을 앞에 한 마을이라 그리 부른다.

어리 (於里)

서천군 동부면(東部面)의 지역으로서 느름나무가 많으므로 느름매 어산(於山)이라고 부르던 지역으로 1914년 어리(於里)가 되었다. 광산김씨(光山金氏)70여호가 집성마을을 이루는 지역이다.

모산 (毛山)

방죽안쪽에 마을이 있으므로 모산이라고 부른다.

방죽목

방죽근처에 마을이 있으므로 방죽목이라고 부른다.

붓당굴

불당곡(佛堂谷), 북당리(北堂里)라고도 부른다. 옛날에 불당(佛堂)이 있었던 마을이다.

장승배기

마을에 장승이 박혀있으므로 장승배기라고 부른다.

옥북리 (玉北里)

서천군 남부면(南部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옥남 북쪽에 있으므로 옥북리(玉北里)라 하였다.

관저울

관형(冠衡)이라고도 부른다.옛날에 관가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마을이라 관저울 이라고 부른다.

구수랑개

옥포(玉浦)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마을앞에 개가 있었으며 마을의 형국이소의 구수같다 해서 구수랑개라고 불렀다 한다.

남상골

남상곡,남상, 남상리(南上里)라고도 부른다.옛날 남부면의 위쪽이 되므로 남상골, 남상곡,남상, 남상리라고 부른다.

역말

역촌(驛村) 역리(驛里)라고도 부른다.조선시대에 두곡역(豆谷驛)이 있었던 마을이다.

옥산리 (玉山里)

서천군 서부면(西部面)의 지역으로서 구슬뫼 또는 옥산(玉山)이라고 부르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옥산리(玉山里)라 하였다. 파평윤씨(坡平尹氏)와 나주나씨(羅州羅氏)의 집성마을이 많은 지역이다.

가잿골

냇물에 가재가 많으므로 가잿골이라고 부른다.

강당 (講堂)

학문을 연구하는 강당이 있는 마을이라 그리 부른다.

망골

망운곡(望雲谷)이라고도 부른다. 구름이 지나는 것이 시선(詩仙)이나 볼 수 있게 글이 있는 마을이라 망운곡 변하여 망골이라고 부른다.

바라골

발동(鉢洞)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지형이 불승의 바라처럼 생겼다 한다.

복용굴

복용곡(伏龍谷)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지형이 용이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라 해서 복용굴, 복용곡이라고 부른다.

성북 (城北)

성북리(城北里)라고도 부른다. 옥산 북쪽에 마을이 있으므로 성북이라고 부른다.

진등

마을이 긴 등성이에 있으므로 진등이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월포리 (月浦里)

서천군 서부면(西部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월산(月山)과 금포(金浦)의 이름을 따서 월포리라 하였다. 금녕김씨(金寧金氏)의 집성마을이 있는 지역이다.

골뜸

골짜기에 마을이 있으므로 골뜸이라고 부른다.

땅산

당산(堂山), 월산(月山),월산리(月山里)라고도 부른다. 당제를 지내는 당산이 있는 마을이라 그리 부른다.

쇠깨

금포(金浦)라고도 부른다. 전에 금(金)이 많이 나왔던 마을이라 금포 쇠깨라고 부른다.

신창동 (新艙洞)

선창가에 마을이 새로 생겼으므로 신창동이라고 부른다.

장잣굴

자작굴이라고도 부른다. 옛날에 장자가 살았던 마을이다.

큰구렁

금맥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 마을로 땅속에 큰 공간이 있다 해서 큰구렁이라고 부른다.

장선리 (長善里)

서천군 동부면(東部面)의 지역으로서 장수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장선(長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장선리가 된 지역이다. 평해구씨 (平海丘氏)의 집성촌이 있는 지역이다.

대통매

죽림(竹林)이라고도 부른다. 왕대나무가 많은 마을이라 대통매라고 불렀다.

도란뜸

마을곁으로 마을이 돌아앉아 있다 해서 도란뜸이라고 부른다.

돌다리

석교(石橋)라고도 부른다. 전에 돌다리가 있었다.

무수(舞袖)

무수리라고 부른다. 마을 지형이 꼭 선녀가 춤추는 형국이라 해서 무수라고 부른다.

시조굴

시곡(詩谷)이라고도 부른다. 서당이 있어서 항시 글 읽는 소리가 끊기지 않았던 마을이다.

시루굴

마을 지형이 꼭 시루처럼 둘러있다 해서 시루굴이라고 부른다.

죽산리(竹山里)

서천군 서부면(西部面)의 지역으로서 대밭이 많으므로 죽산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죽산리라 하였다.

말머리

상소(上所)라고도 부른다. 마을 지형이 말의 머리처럼 생겼다해서 말머리라고 부른다.

소매

우산(牛山), 산소(山所), 하소(下所)라고도 부른다. 지형이 소처럼 생겼다는 소매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아목섬

아항도(牙項島 鵝項島)라고도 부른다. 섬이 거위의 목처럼 생겼다 한다.

한성리 (漢城里)

서천군 서부면(西部面)의 지역으로서 한성굴 또는 한성(漢城), 봉성리(鳳城里)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한성리라 하였다. 금녕김씨(金寧金氏)의 집성촌이 있는 지역이다.

한성 (漢城)

흙으로 쌓은 한성리산성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해창 (海倉)

옛날에 해창(海倉)이 있었던 지역에 마을이 생기면서 해창이라고 부른다.

골패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골짜기에 마을이 있다 해서 골패라고 부른다.

마동 (馬洞)

마을의 지형이 말의 형국을 닮았다 해서 마동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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