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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유래

우리읍소개 우리마을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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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서천군(舒川郡)의 남쪽이 되므로 남부면(南部面)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서부면(西部面)의 19개 동리를 합할 때 서부면과 남부면의 이름을 따서 서남면(西南面)이라 하고 1929년에 간척지를 매우고, 1931년에는 장항선(長項線)이 개통되고, 1937년에는 장항항(長項港)이 완성되어 갑자기 인구가 늘어나, 1938년 10월 1일에 장항읍이 되었다.

긴 목에 읍이 생겼다 해서 장항(長項)이라 부른다. 집성마을으로는 김해김씨(金海金氏), 60여호 추계추씨(秋溪秋氏) 30여호, 온양방씨(溫陽方氏) 30여호, 용궁전씨(龍宮全氏)20여호, 밀양박씨(密陽朴氏) 20여호가 있다.

성주동 (聖住洞)

마서면 도삼리(馬西面 道三里)와 송내리(松內里)와 성주동에 걸쳐있는 성주봉(聖住峯)아래에 있으므로 그 이름을 따서 성주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구전으로는 성주동에는 옛날에 성인이 살 곳을 찾다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 살게 되었다는 속설도 있다.

구렁이

마을 지형이 구렁이처럼 생겼다 해서 구렁이라고 부른다.

비그매

횡산(橫山) 횡산리(橫山里) 산서리(山西里)라고도 부르는 마을이다. 산이 빗겨져 있다 해서 비그매라고 부른다.

성줏골

승쥐골 성주동이라고도 부른다. 성주봉 아래에 있으므로 그리 부르고 일설로는 성인이 지팡이를 꼽고 살았다 해서 성줏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연모리

연모노리(燕毛老里)라고도 부른다. 마을에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이 있다 해서 그리 부른다

원두골

원두리(元斗里) 원두동리(院頭洞里)라고도 부른다.옛날에 관가인 원(院)이 있을 때 그 머리쪽으로 마을이 있으므로 원둣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며 또한 일설로는 마을 뒷산에 있는 세 개의 묘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와의 풍경이 원두꽃과 같다 해서 원둣골이라고도 부른다는 속설이 있다.

정자말

큰 정자나무가 있었던 마을이다.

송림동 (松林洞)

지형이 목처럼 생겼다 해서 목리 항리(項里)라고 부른고 뒤에는 장항리가 되고 간척지에 새로된 마을과 지역을 넓혀서 일제때 송빈정 ( 松濱町)1947년 후엔 송림동이라 부른다.

대항매

대항(大項)이라고도 부른다. 큰 목을 이루는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솔밭안들

솔만들 간사지라고도 부른다. 360m에 걸친 솔밭과 갯벌을 개척하여 솔밭안에 있는 마을이다.

대섬

죽도(竹島)라고도 부른다. 큰 대섬, 작은 대섬등 다섯 섬이 있음. 대나무가 무성하였던 섬이다.

구렁말

굴항리(屈巷里)라고도 부른다. 근처 동북쪽에 있는 왕개산 아래에 구멍이 있으므로 구멍말이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구렁말이라 부른다.

모금외

모과나무가 있었던 마을이라 그리 부른다.

방죽굴

방죽이 있었던 마을이다.

세멀

삼흘(三屹)이라고도 부른다. 세 봉우리가 있는 마을이다.

신북골

심복곡(深福谷) ,신촌 (新村)이라고도 부른다. 새로된 마을로 복이 깃드는 지역에 있다 해서 신복곡이 변하여 신복굴, 신촌이라고 부른다.

원모루

원모리 (元毛里) 원모로리(院毛老里)라고도 부른다. 주마탈안(走馬奪鞍)의 명당이 있다는 마을이다.

무네미

수여리(水餘里)라고도 부른다. 산줄기가 낮아서 이쪽의 물이 저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해서 무네미라고 부른다.

까지멀

까치가 많이 서식하는 마을이다.

장암동

(長岩洞),장암진(長岩津), 장암(長岩)이라고도 부른다. 길고 큰 바위가 있으므로 그리 부른다. 백제때부터 마을이 형성 되었던 지역으로 집성마을의 형성은 온양방씨(溫陽方氏)가 처음이라 한다.

당크매

당곡(堂谷),당골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뒷산에 신당이 있다 해서 그리 부른다.

성박기

성외(城外)문박기라고도 부른다. 성안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다.

성안

성내라고도 부른다. 서천포 진영성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질구지

제곶 계곶이라고도 부른다. 닭의 벼슬같은 곶에 있다 해서 그리 부른다. 백제때의 기벌포(伎伐浦)가 앞에 펼쳐진다.

창선동 (昌善洞)

갈대밭을 1929년부터 개척하고 1938년 장항읍을 신설할 때 본정일정목(本町一丁目)이라 하다가 1947년 창선동(昌善洞)으로 고침

화천동 (和泉洞)

1930년에 새로 개척하여 새로 마을이 되고 1938년 장항읍을 신설할 때 화천정(和泉町)이라 하다가 1947년 동명 변경에 따라 화천동으로 고쳤다.

양철뜸

간척지를 조성할 때 만들어진 마을로 온 마을이 양철집으로 되었다 해서 양철뜸이라고 부른다.

사택촌 (舍宅村)

1931년 제련소 종업원의 사택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사택촌이라고 부른다.

용수멀

용수두(龍水頭),용수리(龍洙里)라고도 부른다.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해서 그리 부른다.

성박기

성외(城外)문박기라고도 부른다. 성안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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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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